폭염 속에도 '에어컨 켜세요'… 효심 가득한 딸의 영상통화
무더운 여름날 오후, 직장 중 쉬는 시간, 갑작스럽게 아버지께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지금 네 동네 근처인데, 아빠랑 저녁 같이 먹을래?” 짧은 한마디에 발걸음이 멈추고, 서둘러 외출복을 챙겨 입었다. 사실 아버지께 드릴 이야기가 있었다.
이야기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손주가 태어나 기뻐하시던 부모님은 워킹맘인 언니를 위해 손주 육아를 자청하셨다. 당시 본가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더운 여름에도 손주를 위해 시원하게 해줄 방법이 없어 걱정이 많으셨다. 하지만 손주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내시는 부모님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아버지는 더욱 쇠약해지셨다. 폭염이 닥쳐오는 날씨에 걱정이 앞섰다. 아버지께 전화해 안부를 여쭸지만, 평소처럼 무심하게 대답하셨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아끼는 장작불을 켜고 땀을 뻘뻘 흘리며 더위를 이겨내고 계셨다.
그 순간, 나는 아버지께 영상통화를 걸었다. 화면 속 아버지는 땀으로 젖은 얼굴에 힘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아버지, 더우시죠? 에어컨 켜세요. 제가 전기세 부담 져 드릴게요.”
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으시더니,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제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니까, 에어컨 켜고 편안하게 쉬세요.” 아버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는 조용히 에어컨을 켜셨다.
전기세 폭탄이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힘든 시기일수록 서로를 위로하고 챙겨주는 것이 가족이다.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전기세는 감수하리라 다짐했다. 앞으로도 아버지께 자주 연락드리고, 건강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